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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

91일 논어성공학

태백 17

주나라의 태왕에게는 세아들인 첫째 태백, 둘째 중옹, 셋째 계력이 있었다. 계력의 아들 창이 후 일 문왕으로 왕위를 이은 후 그의 아들 무왕이 천하를 평정하게 된다. 태왕은 계력의 아들 창이 뛰어난 인물임을 알고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그의 아들이 왕이 되길 바랐다.

부왕의 뜻을 간파한 태백은 나라의 분란을 막기 위해 왕위를 세 번이나 양보하고 거절한 후 주나라로 돌아가지 않은 현인이다. 태백이 모든 행동을 백성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행하여 백성들이 그를 칭송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아들 자, 공자의 존칭) (가로 왈)

자왈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泰伯

태백은

태백은

 

(터 기)(옳을 가)(이를 위)(이를 지)(덕 덕)(어조사 야)(이미 이)(어조사 의)로다

기하위지덕야이의로다

지극한 덕을 지녔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석 삼)(써 이)(하늘 천)(아래 하)(사양할 양)

삼이천하양

천하를 세 번 양보했지만

 

(백성 민)(없을 무)(얻을 득)(말이을 이)(일컬을 칭)(어찌 언)이온여

민무득이칭언이온여

백성들이 그의 덕을 칭송할 길이 없었다.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정치인으로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어 한산도 대첩, 명량 대첩등의 해전에서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부하들을 통솔하는 지도력, 뛰어난 지략, 그리고 탁월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해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며, 1545(인종 1) 428(음력 38) 한성부(漢城府) 건천동(乾川洞, 현재 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卞氏)와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598년 일본군을 마지막으로 격퇴시킨 노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임진왜란 7년간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를 남겼다.

 

이순신 일화 <백의종군>

1597(선조 30) 일본군이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발발하였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元均)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조선 수군이 전멸하였다.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여 조선 수군을 재건하도록 하였다.

1597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정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일본이 흘린 거짓 정보에 속아 그에게 가토 기요마사를 생포하라 명했다.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임을 알고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순신을 시기하던 선조는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들여 이순신을 파직하고, 한양으로 압송, 투옥, 문초가 이어졌고 죽음에 이르기 전에 우의정 정탁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하였다. 투옥된 지 28일만에 선조의 명을 받아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되었다.

 

159741, 선조의 명으로 이순신 장군은 의금부에서 출옥하여 장수가 직위와 모든 권한을 내려 놓고 흰옷을 입고 군대를 따라가 종군하는 백의종군의 길을 떠난다. 종각역 의금부를 출발하여 남태령, 경기도 수원, 충청도 아산, 경상도 하동을 지나 합천 초계의 권율 도원수진에 이르는 640km의 길을 어머니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고 걸었던 죽음보다 고통스런 행로였다. 백의종군은 원균이 일본군에 참패하고 전사하자 83124일만에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재임명되며 끝이 난다.

이순신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할 당시 우의정이었던 약포 정탁이 이순신을 구명하기 위하여 올린 상소문 신구차는 이순신을 죽음에서 구한 명문장으로 알려졌다.

이순신이 훗날 나를 추천한 이는 서애 유성룡이요, 나를 구해준 이는 약포 정탁이다.’ 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뤼튼 이미지 추출